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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미움 분노 살인
책 소개
미움과 분노가 마음과 관계에 남기는 흔적을 성경의 관점에서 돌아보는 책입니다. 정죄와 원망을 성령님께 맡기고, 용서와 사랑을 삶에서 실천하는 길을 묵상합니다.
목차
머리말 미움은 마음의 살인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다 살인은 손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고 드러내어 견책하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싸움은 네 안의 정욕에서 나온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가 용사보다 낫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분노에 마귀의 틈을 내주지 말라 사람의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다 드러낸다 미움은 어디까지 자라는가 쓴 뿌리를 그날로 뽑아라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킨다 원망을 품은 채 드리는 예물은 받지 않으신다 분을 이기지 못한 자가 스스로 감옥을 만든다 십자가에서 끝난 미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가 말한다 십자가가 원수 된 것을 소멸했다 십자가 위에서 용서를 구하신 예수님 돌에 맞으면서도 죄를 돌리지 않은 스데반 살기를 뿜던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었다 우리도 전에는 미워하고 미움받던 자였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형제에게 먼저 가서 화목하라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한다 은혜 입은 자의 상에 앉으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저자 소개 판권
머리말 · 본문 미리보기
머리말 “미움은 마음속에서 저지르는 살인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피를 묻힌 것이다. 그리고 그 피는 사람의 결심이 아니라 성령님의 손으로만 씻긴다.” 당신은 지금 마음속에 누군가를 죽여 놓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살인을 아주 먼 죄라고 생각합니다. 뉴스에나 나오는 일, 흉악한 사람들의 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못을 박았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입니다. “미워하는 자 가운데 더러는”이 아닙니다. 마다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을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십니다. 사람의 법정은 시체가 있어야 살인을 다루지만, 하나님의 법정은 마음속의 미움 한 조각만으로도 살인을 다루십니다. 나는 이 말씀 앞에서 오랫동안 도망쳤습니다. 나는 사람을 때린 적도 없고 흉기를 든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님께서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아들아, 네 마음속에 지금도 지워 버리고 싶은 얼굴이 있느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속이 뒤틀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에서 그를 여러 번 지워 버렸습니다. 성령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살인이다. 너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그날 무너졌습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온 세월이 한순간에 허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는 착한 사람을 조금 더 착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살인자를 사면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나를 찾아오신 분이 누구셨습니까? 성령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하실 일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책망하시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엘렝코”(elencho)는 감추어진 것을 빛 아래로 끌어내어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야단치시는 분이 아니라 비추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 『성령님과 미움 분노 살인』인 이유입니다. 미움을 다루는 책은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합니다. 참으라고 하고, 이해하라고 하고, 관점을 바꾸라고 합니다. 나도 십 년을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으로는 뿌리가 뽑히지 않았습니다. 참은 미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내려간 것뿐이었습니다. 미움은 사람이 손댈 수 있는 깊이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가장 밑바닥, 사람이 자기 손을 넣을 수 없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까지 내려가시는 분이 계십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분이 사람의 깊은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다 성령님께서 에베소서 2장을 열어 주셨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4~16) 소멸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줄여 주셨거나 다스릴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소멸하셨습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미움과 싸우기를 그만두고, 이미 끝난 십자가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악물어도 안 되던 용서가 저절로 되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뒤틀리던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만든 평화가 아니라 안에서 흘러나온 평화였습니다. 그 평화가 어디서 왔습니까? 내 노력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사랑을 성령님의 열매라고 했습니다.(갈 5:22) 열매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맺히는 것입니다. 사과나무에 사과를 붙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부은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이미 부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당신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한데 밸브가 잠겨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다섯 부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미움이 곧 살인임을 확인하고, 제2부는 분노의 근원을 파헤치며, 제3부는 미움을 그대로 두면 어디까지 가는지 따라갑니다. 제4부는 십자가에서 이미 끝난 복음을 선포하고, 제5부는 그 위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다섯 부 전체에 한 분이 함께 걸으십니다. 읽는 순서를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의 세 부가 아프지 않으면 네 번째 부가 기쁘지 않습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이 소중한 법입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이 책을 읽으시기 전에 성령님께 이렇게 아뢰십시오. “성령님, 제 마음을 비추어 주십시오.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보고 나서 도망하지 않게 하소서.” 이 기도를 드리고 읽으시면 이 책은 종이가 아니라 거울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덮을 때 당신의 마음속에서 한 사람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 오래전에 죽여 놓았던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면, 사실은 당신이 사는 것입니다. 김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