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미리보기
성령님과 교통하는 5가지 사랑의 언어
책 소개
책 소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첫째 언어 — 고백 제1장. 사랑은 반드시 말로 표현된다 제2장. 성령님을 부르는 입술이 인생을 바꾼다 제3장. 찬양은 성령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모국어다 제4장. 정죄의 말을 버려야 사랑의 말이 나온다 제5장. 성령님은 나를 칭찬하신다 제2부. 둘째 언어 — 동행 제6장. 교통하심은 함께 있는 시간에서 자란다 제7장. 아침 첫 시간을 성령님께 드리라 제8장. 골방은 성령님과 단둘이 있는 방이다 제9장. 방언은 성령님과 나누는 둘만의 언어다 제10장. 300년을 동행한 에녹처럼 살라 제3부. 셋째 언어 — 제물 제11장. 사랑은 드리는 것으로 증명된다 제12장. 나를 산 제물로 드리라 제13장. 물질은 마음이 담긴 사랑의 편지다 제14장. 드린 자에게 갚아 주시는 성령님 제15장. 옥합을 깨뜨린 여자의 향기 제4부. 넷째 언어 — 순종 제16장. 묻는 사람에게 성령님이 말씀하신다 제17장. 순종은 가장 큰 사랑의 고백이다 제18장. 조급함을 버리고 성령님을 기다리라 제19장. 성령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실패가 없다 제20장. 작은 순종이 큰 문을 연다 제5부. 다섯째 언어 — 임재 제21장. 기름부으심은 성령님의 손길이다 제22장. 그분의 품에 안기는 법 제23장. 성령 충만은 사랑에 잠기는 것이다 제24장. 근심하시게 하지 말고 늘 안겨 있으라 제25장. 은혜와 사랑과 교통하심 안에서 맺음말 부록 찾아보기 지은이 판권
머리말 · 본문 미리보기
당신은 성령님과 어떤 말로 사귀고 있습니까? 당신은 성령님과 어떤 말로 사귀고 있습니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성령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성령님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그러면 하루가 사랑으로 열립니다. 나는 그분 때문에 한없이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긴 편지를 이 한마디로 닫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 짧은 축복 속에 그리스도인의 인생 전부가 들어 있습니다. 은혜는 예수님에게서 오고,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오며, 교통하심은 성령님에게서 옵니다. 여기서 “교통하심”이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koinōnia)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것을 fellowship 또는 communion이라고 옮겼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같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근 코이노스(κοινός)가 ‘공동의, 함께 쓰는’이라는 뜻입니다. 재산을 함께 쓰고, 밥상을 함께 나누고, 생각과 감정과 목숨까지 공유하는 사이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할 때 쓰인 말이 바로 이 계열입니다. 라틴어 성경은 이것을 콤무니카티오(communicatio)로 옮겼습니다. 영어 communion과 community가 여기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사귐과 공동체가 원래 한 뿌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성령님과 모든 것을 나누며 사는 그 사귐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은 성령님과 무엇을 나누고 있습니까? 교통은 언제나 언어를 타고 흐릅니다. 부부가 한집에 살아도 말을 하지 않으면 남남이 되듯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도 내가 그분과 말을 나누지 않으면 그 사귐은 식은 방처럼 차가워집니다. 성령님은 벽에 걸린 액자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인격이십니다. 인격은 반드시 언어로 사귑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사랑을 전하는 저마다의 언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에 살아나고, 어떤 사람은 함께 있어 주는 시간에 마음이 녹고, 어떤 사람은 작은 선물에 감동하고, 어떤 사람은 말없는 섬김에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손길 하나에 무너집니다. 상대가 알아듣는 언어로 말해야 사랑이 전달됩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언어가 어긋나면 그 사랑은 도착하지 않습니다. 성령님과의 사귐도 똑같습니다. 아니, 훨씬 더 분명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언어가 뚜렷하게 다섯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고백의 언어입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입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동행의 언어입니다. “성령님, 함께 가시죠”라며 시간을 함께 쓰는 것입니다. 셋째는 제물의 언어입니다. “성령님, 받아 주세요”라며 나와 내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넷째는 순종의 언어입니다.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임재의 언어입니다. “성령님, 안아 주세요”라며 그분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성경에서 발견했고, 지난 세월 동안 성령님과 살면서 하나씩 몸으로 배웠을 뿐입니다. 나는 빈손이었습니다. 죄와 목마름, 병과 가난, 어리석음과 징계와 죽음 가운데 있던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오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나는 의와 성령 충만, 건강과 부요함, 지혜와 평화와 생명이 가득한 비옥한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령님은 비참한 내 인생을 비옥하게 바꾸셨습니다. 무엇이 그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대단한 프로그램이나 고행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성령님께 말을 걸고, 그분의 대답을 듣고,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사귐이 인생을 바꾼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기도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꾼다고 말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성령님과의 교통은 그분을 움직이려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그분께 맞추어 가는 사귐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것을 “함께 머무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신앙을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고 불렀습니다.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귐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고, 언어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깊어집니다. 이 책은 그 다섯 가지 언어를 하나씩 배우는 책입니다. 제1부에서는 고백의 언어를 배웁니다. 사랑은 반드시 입술로 나와야 합니다. 제2부에서는 동행의 언어를 배웁니다. 시간을 함께 쓰지 않는 사랑은 없습니다. 제3부에서는 제물의 언어를 배웁니다. 드리지 않는 사랑은 말뿐입니다. 제4부에서는 순종의 언어를 배웁니다. 묻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답이 없습니다. 제5부에서는 임재의 언어를 배웁니다. 결국 사랑은 안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책을 지식으로 읽지 말고 대화로 읽으십시오. 한 장을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성령님께 직접 말을 걸어 보십시오.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함께 가시죠.”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 한마디만 해도 됩니다. 그 한마디가 당신의 인생을 바꿉니다. 핑계가 없습니다. 오직 순종뿐입니다. 성령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안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잠실에서 김열방